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작성자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09-12-15 13:50 조회3,633회 댓글0건관련링크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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[벌초] 대행업체 '산소 지킴이'
| 기사입력 2005-09-01 12:12 | 최종수정 2005-09-01 12:12
부산 동구 초량동에 사는 박모씨는 일흔일곱이다.
올해부터 외할
머니 어머니 여동생의 묘 3기를 벌초 대행업체에 맡기기로 했다.
아들 경찬(44·부산 사하구 당리동)씨가 인터넷을 뒤져 산소지킴
이라는 업체를 선정했다.
아버지 박모씨는 신문에 이름을 내지 말
라고 신신당부를 했다.
"조상묘 벌초를 남한테 맡기는데 넘사시러
버서 우째 신문에 이름을 내노?"
아버지 묘와 멀리 떨어진 곳에 박모씨의 외할머니 어머니 여동생
의 무덤이 있었다.
박모씨의 아버지는 묘터를 잡고 한 해도 거르
지 않고 벌초를 해왔다.
박모씨 또한 30년 전부터 물려받아 외할
머니와 어머니,여동생의 묘를 극진하게 돌봤다.
이제 아들 경찬씨 차례. 그러나 삼십년 전의 민둥산이 지금은 정
글로 변했다.
지지난해에는 묘터가 헷갈려 경찬씨가 깡통을 단 줄
을 길게 늘어놓아 보기도 했다.
묘터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염려는 그냥 염려가 아니었다.
경남 의
령군 화정면 모시골마을 야산. 벌초 대행업체 사람들을 만나 묘터
로 접어드는 산길에 당도하자 잡풀과 가시들로 길이 끊겨 있었다.
벌초 대행업체 산소지킴이의 박문규(45) 사장이 예초기로 길을
내야 했다.
"돌아가신 우리 아버지의 장모는 아들이 없었는 기라. 양자를 얻
었는데 몇 년 몬가서 그만둔 거야. 우리 아버지가 당신 장모 묘터
도 잡고 장모 외로울까봐 딸하고 외손녀를 옆에 모신 기라. 그라
니까 내가 우예 이 묘터를 소홀히 하겠노? 인자 차 타는 것도 고
역이고 허리가 아파서 산에 오르지도 몬하겠고. 여기 벌초 끝내고
아부지 할아부지 묘까지 돌보믄 하루로 부족한 기라. 내 죽으면
이 길을 우째 찾아 올라 오겠노?"
박문규 사장이 예초기로 봉분을 깎기 시작했다.
또 다른 직원 한
명도 시동을 걸었다.
잡풀들이 잘려나간 자리에 야트막한 봉분이
돋을새김처럼 살아나기 시작했다.
예초기가 닿지 않는 구석진 곳
은 나머지 두 사람이 낫과 가위로 손질했다.
또 다른 한 명은 갈쿠리로 풀을 걷어냈다.
연방 모기가 얼굴에 들
러붙었다.
풀냄새 연료냄새가 엔진소음에 뒤섞였다.
가끔 예초기
칼날에 돌이 튀기도 했다.
불과 10여분이 지났을까. 무덤 3기의
벌초작업이 끝났다.
박모씨 부자가 한나절 하던 일을 전문가 다섯
명이 20분이 채 안 돼 해치운 것이다.
박 사장이 오늘 끝내야 할 작업은 스무 곳이다.
박 사장이 연간
벌초를 대행해주는 무덤의 숫자는 1천300여기. 한 기당 수수료는
6만5천원(2기는 5만5천원,3기 이상 추가 할인)이다.
올해로 8년째 이 사업을 하면서 이제 사업이 제 기반에 올랐다.
올해는 1천500기까지 예상하고 있다.
추가로 벌초 고객이 연락을
해도 일손이 없어 접수를 받지 못할 지경이다.
"돈 안 됩니더. 직원 여덟명 월급 주고,광고 내고,트럭하고 기계
유지하고 남는 게 뭐 있겠습니꺼. 이 무덤은 그래도 양반입니더.
예초기 지고 한 시간 올라가는 곳도 있고예,무덤이 아니라 아카시
아밭인 곳도 있고예. 사흘 전에는 벌한테 오십방 정도 물렸다 아
입니꺼. 그날따라 에프킬라를 안 가지고 갔다가,내 하고 저기 저
양반하고 둘 다 응급실 갔다 아입니꺼. 세상에 거저 먹는 거 하나
도 없습니데이. 하지만 한 달 바짝하고 일년 내내 다른 일 하니까
그거는 좋지예. 해수욕장 장사처럼요."
벌초가 끝나자 박 사장은 디지털카메라로 현장을 찍었다.
벌초 전
과 벌초 후의 장면을 찍어 경찬씨의 e-메일로 보내준다.
그리고
봉분 꼭대기에 올라서더니 GPS수신기를 눌렀다.
경도 35도 16분 1
9초,해발 53m. 수첩에 옮겨 적는다.
내년에는 물론 박씨 부자가
동행하지 않는다.
의뢰인의 이름만 누르면 수신기가 가리키는데로
길을 찾아오게 된다.
벌초에도 인공위성이 동원되는 것이다.
박
사장은 산을 내려와 다시 사진을 찍는다.
멀리서 찍어두어야 위치
가 더 정확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다.
박 사장은 내일은 경북 경주
시 기계면까지 작업을 하러 가야 한다.
부산 경남북이 자신의 영
업권역이다.
초창기에는 목포까지 갔었지만 지금은 고객이 늘어
너무 먼 곳은 갈 수가 없다.
"인자 잊어도 되겠다.
" 일꾼들이 떠나자 박모씨가 흐뭇하게 웃는
다.
"외동 아들이다 보니 해마다 벌초를 하루만에 끝내지 못해 고
역이었습니다.
이제 묘터 잃을 염려도 없고 수고도 덜게 됐어요."
아들 경찬씨 내외도 홀가분하다.
글=이상민기자 yeyun@busanilbo
.com
사진=이재찬기자 chan@
| 기사입력 2005-09-01 12:12 | 최종수정 2005-09-01 12:12
부산 동구 초량동에 사는 박모씨는 일흔일곱이다.
올해부터 외할
머니 어머니 여동생의 묘 3기를 벌초 대행업체에 맡기기로 했다.
아들 경찬(44·부산 사하구 당리동)씨가 인터넷을 뒤져 산소지킴
이라는 업체를 선정했다.
아버지 박모씨는 신문에 이름을 내지 말
라고 신신당부를 했다.
"조상묘 벌초를 남한테 맡기는데 넘사시러
버서 우째 신문에 이름을 내노?"
아버지 묘와 멀리 떨어진 곳에 박모씨의 외할머니 어머니 여동생
의 무덤이 있었다.
박모씨의 아버지는 묘터를 잡고 한 해도 거르
지 않고 벌초를 해왔다.
박모씨 또한 30년 전부터 물려받아 외할
머니와 어머니,여동생의 묘를 극진하게 돌봤다.
이제 아들 경찬씨 차례. 그러나 삼십년 전의 민둥산이 지금은 정
글로 변했다.
지지난해에는 묘터가 헷갈려 경찬씨가 깡통을 단 줄
을 길게 늘어놓아 보기도 했다.
묘터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염려는 그냥 염려가 아니었다.
경남 의
령군 화정면 모시골마을 야산. 벌초 대행업체 사람들을 만나 묘터
로 접어드는 산길에 당도하자 잡풀과 가시들로 길이 끊겨 있었다.
벌초 대행업체 산소지킴이의 박문규(45) 사장이 예초기로 길을
내야 했다.
"돌아가신 우리 아버지의 장모는 아들이 없었는 기라. 양자를 얻
었는데 몇 년 몬가서 그만둔 거야. 우리 아버지가 당신 장모 묘터
도 잡고 장모 외로울까봐 딸하고 외손녀를 옆에 모신 기라. 그라
니까 내가 우예 이 묘터를 소홀히 하겠노? 인자 차 타는 것도 고
역이고 허리가 아파서 산에 오르지도 몬하겠고. 여기 벌초 끝내고
아부지 할아부지 묘까지 돌보믄 하루로 부족한 기라. 내 죽으면
이 길을 우째 찾아 올라 오겠노?"
박문규 사장이 예초기로 봉분을 깎기 시작했다.
또 다른 직원 한
명도 시동을 걸었다.
잡풀들이 잘려나간 자리에 야트막한 봉분이
돋을새김처럼 살아나기 시작했다.
예초기가 닿지 않는 구석진 곳
은 나머지 두 사람이 낫과 가위로 손질했다.
또 다른 한 명은 갈쿠리로 풀을 걷어냈다.
연방 모기가 얼굴에 들
러붙었다.
풀냄새 연료냄새가 엔진소음에 뒤섞였다.
가끔 예초기
칼날에 돌이 튀기도 했다.
불과 10여분이 지났을까. 무덤 3기의
벌초작업이 끝났다.
박모씨 부자가 한나절 하던 일을 전문가 다섯
명이 20분이 채 안 돼 해치운 것이다.
박 사장이 오늘 끝내야 할 작업은 스무 곳이다.
박 사장이 연간
벌초를 대행해주는 무덤의 숫자는 1천300여기. 한 기당 수수료는
6만5천원(2기는 5만5천원,3기 이상 추가 할인)이다.
올해로 8년째 이 사업을 하면서 이제 사업이 제 기반에 올랐다.
올해는 1천500기까지 예상하고 있다.
추가로 벌초 고객이 연락을
해도 일손이 없어 접수를 받지 못할 지경이다.
"돈 안 됩니더. 직원 여덟명 월급 주고,광고 내고,트럭하고 기계
유지하고 남는 게 뭐 있겠습니꺼. 이 무덤은 그래도 양반입니더.
예초기 지고 한 시간 올라가는 곳도 있고예,무덤이 아니라 아카시
아밭인 곳도 있고예. 사흘 전에는 벌한테 오십방 정도 물렸다 아
입니꺼. 그날따라 에프킬라를 안 가지고 갔다가,내 하고 저기 저
양반하고 둘 다 응급실 갔다 아입니꺼. 세상에 거저 먹는 거 하나
도 없습니데이. 하지만 한 달 바짝하고 일년 내내 다른 일 하니까
그거는 좋지예. 해수욕장 장사처럼요."
벌초가 끝나자 박 사장은 디지털카메라로 현장을 찍었다.
벌초 전
과 벌초 후의 장면을 찍어 경찬씨의 e-메일로 보내준다.
그리고
봉분 꼭대기에 올라서더니 GPS수신기를 눌렀다.
경도 35도 16분 1
9초,해발 53m. 수첩에 옮겨 적는다.
내년에는 물론 박씨 부자가
동행하지 않는다.
의뢰인의 이름만 누르면 수신기가 가리키는데로
길을 찾아오게 된다.
벌초에도 인공위성이 동원되는 것이다.
박
사장은 산을 내려와 다시 사진을 찍는다.
멀리서 찍어두어야 위치
가 더 정확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다.
박 사장은 내일은 경북 경주
시 기계면까지 작업을 하러 가야 한다.
부산 경남북이 자신의 영
업권역이다.
초창기에는 목포까지 갔었지만 지금은 고객이 늘어
너무 먼 곳은 갈 수가 없다.
"인자 잊어도 되겠다.
" 일꾼들이 떠나자 박모씨가 흐뭇하게 웃는
다.
"외동 아들이다 보니 해마다 벌초를 하루만에 끝내지 못해 고
역이었습니다.
이제 묘터 잃을 염려도 없고 수고도 덜게 됐어요."
아들 경찬씨 내외도 홀가분하다.
글=이상민기자 yeyun@busanilbo
.com
사진=이재찬기자 chan@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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